본문 바로가기

Books/시

안개속에서


안개속에서



- Hermann Hesse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닒음!

덤불과 돌이 모두 외롭고,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하나니,

모두가 그저 홀로일 뿐이네.


나의 삶이 아직 밝았을 때

세상은 내게 친구들로 가득했지,

지금은 안개가 내려와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네


어둠을 모르는 자는 정녕

지혜롭지 못하나니,

어둠은 기어이 내려와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조용히 갈라놓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닒은!

삶이란 외롭게 있는 것,

누구도 다른 이를 알지 못하고

모두가 홀로 있네.







안개 : 대기 중 수증기가 응집하여 지표 가까이에 작은 물방울이 떠있는 현상


나에게 안개란 말이 주어졌을 때, 떠오른 것은 영화 '미스트' 그리고 고전13:12다.


<영화 '미스트'>


영화 '미스트'에서 안개는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다. 뿌연 안개속에서 사람들은 그 너머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불안해 하며, 두려워 하게 만든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가지 각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안개는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을 불완전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때문에 사람의 본능을 일 깨우며, 그 본능대로 행동하는 사람들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안개는 그 역할에 충실하고 주인공은 한치 앞의 군인들을 알아 보지 못하면서 비극적 혹은 허무한 결말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이 구절에서 안개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안개라는 이미지에서 내가 느낀 것은 바로 모호함일 것이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고린도 구절이 떠오른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안개란, 자연적인 현상으로 부터 오는 심상보다, 인간의 감각과 이성의 불완전 때문에 존재를 올바로 인식할 수 없는 한계로써 다가온다.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 에서 나오는 안개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로써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안개는 다른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간을 차단해 다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안개가 낀 결과 안개 속에 있는 존재들은 각각 독립된 객체로써 존재하게 되며,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2행 1연의 "나의 삶이 아직 밝았을 떄"는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3연과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틀림없이 과거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시절은 아마 내가 내가 되기 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 기이한 일이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과거보다 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오히려 그것이 안개가 되어 자신을 외롭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더욱 재미있다. 어둠이라는 존재가 불쑥 튀어나오기 떄문이다. 아마 2행 1연에서의 밝았을떄를 대비하여 말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3연으로 가보자. 어둠을 모르는 자는 '정녕' 이란 말로 강조까지 하며 지혜롭지 못하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둠을 아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문맥상 지혜롭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대비해왔으니 말이다. 


과거 밝았을 때가 더 지혜롭다는 것일까?

화자는 안개속을 거니는 것을 공간의 변화를 말한다. 공간이 변한다는 것은 시간의 변화도 말할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둠은 내려왔다. 우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겪고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안개가 내려오는 것의 의미는 어둠이 '기어이'내려온다는 표현으로 우리가 능동적으로 안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능동적으로 우린 수동적인 상태로 그 어둠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더 많이 배우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저 외로워 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 오묘함과 역설을 기이하다라고 헤세는 표현한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외로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허무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안개속에서 모두가 외로히 홀로 잇음을 인정하고, 단독자로써의 자신을 긍정하는 메세지를 내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