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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61216 여미다

겨울이 잠시 잊었던 자신의 정체성이라도 찾은 것일까? 며칠새 한파가 찾아왔다. 광화문 거리 바람 역시 매서웠고,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하고자 패딩과 모자를 여민다.

나에게 광화문 거리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회사원들이 있는 동경의 모습. 어릴 적부터 다녀온 교회가 있는 모습, 국가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기쁨, 슬픔, 열기, 촛불이 있는 모습 등이다.


#1

평일 광화문 거리의 낮과 밤은 상반된다. 낮에는 바쁜 현대 직장인들로 가득 찬 거리지만, 밤이 되면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직장인들과,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이불 한 장으로 겨울을 나는 노숙자들이 눈에 띈다.

구걸하는 노숙자들에게 돈을 쥐어 주는 것에 대해 예전에 고민했고 그 고민에 대한 대답은 마음이 가는 데로 였다.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마음에 간다면 주는 것이고, 아니라면 안주는 것이다. 돈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잠깐의 기쁨이 되고 나 스스로 위안도 되겠지만, 더 나중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미약한 동정은 그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덫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노숙자들이 있는 광화문 지하를 걷다 보면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과 함께 그들에게서 나는 악취, 또 그들은 왜 저러고 있을까? 하는 여러 감각과 이성, 복합적인 감정이 들지만, 더 생각하는 것이 교회를 다니는 나에게 위선자임을 상기 시켜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상대방과 대화할 때 팔짱을 끼거나 옷깃을 다시 여미는 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자기방어에 대한 무의식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모자를 뒤집어쓰고, 옷깃을 다시 여미는 것은 추위에 대한 방어와 함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보호하고자 하는 행위인 것 같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이 명령이 퍼지는 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 몇백 미터 걷는 도중 다시 옷깃을 여민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스스로 위선자라고 정죄하고 아파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친한 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착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좋은 것만을 원하는 것 같다. 이기적이고 나약하다. 어쩔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원하고 바라고자 하는 것 같다.


추운 겨울 감각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옷을 여미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나만의 옷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옷깃을 여밀 수 있는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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