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中 대중들에게 가장 잘알려진 작품은 햄릿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대사로 우리에게 친숙한 햄릿 오늘 그 작품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햄릿의 줄거리는 사실 복수극이다.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통해 자신의 삼촌이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결국 재상을 죽이게 되고, 햄릿을 사랑하는 오필리아 또한 미치고 결국 죽는다. 마지막에는 자신또한 죽음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된다.
햄릿 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극작품을 보며 가장 쉽게 감동받게 되는 것은 수사학적 기법이다. 햄릿에서는 의인화 하거나 그 상황을 반전시키는 표현을 통해 조롱과, 상황이나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표현한다. 나또한 그렇게 느꼈다....
또한 연극의 특징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말들 또한 소설과 다른 재미였다.
흔히들 햄릿증후군이라고 고르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하지만 내가 느낀 햄릿은 여려 상황속에서 선택장애로 고생하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어떤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가, 사회 보펀적 도덕, 개인의 욕망과 고뇌에 따른 가치판단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인물이였다. 자신의 욕망은 시시때때로 바뀌고, 그때마다 고뇌하는 자신, 그 고뇌를 하느니 차라리 죽길 원하며, 죽음앞에 모두 평등하며 허무함을 나타내지만 결국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이였다. 무엇이 옳든 옳지 않든 그것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그 이상을 꿈꾸려 하지만, 그 때문에 오는 고통과 갈등은 인간을 이성보다 감성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우리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지만 사실 햄릿은 뛰어난 인물이였다. 그는 한나라의 왕자였으며, 마지막 검술 대련에서 이길만큼 육체적으로 뛰어났으며, 독백이나 대사를 통해 알수 있듯이 인간적으로 풍부한 감성과 지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모두 영웅을 동경하며 영웅처럼 살길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좌절하거나, 혹은 꿈꾸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나는 언제부터 내가 되었는가?
햄릿이 나에게 던지는 말은 영웅이 나에게 던지는 이상적인 면모가 아닌 가장 인간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이성이지 않은 감정적인 존재다.
세익스피어 중세 : 고통은 신이 주신것 즉 구원을 향한길 르네상스 : 지금 고통은 신이 나를 버린것인가? 아니면 구원을 향한 길인가?에 대한 회의 영국의 시대배경 종교개혁 초기 르네상스 휴머니즘 인간을 연구하고 주체성에 의미를 부여 14~16 고전(역사)에 대한 재인식 인간학의 시작 인간은 무엇을 이루어냈는가? 왜 이루어냈는가? 신대륙 발견 중세의 쇠퇴 흑사병 아시아->유럽 1340년대 1/10죽음 인간이 느끼는 감각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가족관계가 끝나감 그 시체를 치우는 사람 가장 고귀한 부분을 보여주는 위기의 순간 극장의 탄생 당대 가장 유명한 작가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복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을 깨버렷다는 발견 위기의 순간 과거를 놓지 못하겠다. 복수와 복수극의 시작 법의 심판도, 신의 심판도 기다리지 못한다. 복수의 사회 법과 신의 정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떄 16세기 말 영국과 비슷한 시대흐름 오필리어 - 존 에버렛 밀레이스 수동적인 햄릿 슬프면 슬프고 비참해하지만 복수하지는 못하는 프루이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욕망과 규율의 힘든 관계 과거와 현재의 어려운 관계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바라는 것 아버지가 과거로 사라져야 내가 존재 종교개혁과 죽음의 의미 개인 안으로 들어온 역사 인간이 가는길에 대한 질문 Who's there? 거기 누구냐? 관중과 세상과 나에 대한 질문 1막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혹은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남의 죽음도 전부 타자화 시킬수 없다. 종교 개혁을 통해 죽음의 페러다임이 바뀜 종교개혁 전 -> 착하면 천국, 나쁘면 지옥 나머지 보통사람들은? 14세기떄 연옥 개발 -> 연옥에 있는 사람이 빨리 가려면 후손이 기도 혹은 돈, 신부들의 기도 죽은 사람과 산사람의 유대가 교회와 사제를 통해 강하게 연결됨 종교개혁 후 연옥은 없다. 죽으면 천당과 지옥은 가지만 누가 갈지 모른다. 미래의 일이 불투명해진다. 죽음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일은 현세에서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신교론 주장 종교개혁에서 유령은 괴변! 죽으면 영혼과 육체로 분리되는가? 아니면 둘다 죽인가? 내 영혼은 가멸적인가? 종교개혁 시대의 이론이 죽음의 의미를 되묻다. 1막 감시자들 파수꾼 위기의 시대 유령은 그것 저것 헛것 이라고 부른다. 두렵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말하는 순간 유령 에 대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너는 누구냐?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문 복수를 재촉하는 순간 햄릿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햄릿과 유령 핸리 푸셀리 1789 복수가 없는 복수극 유령 : 누군가의 희생자 현재와 과거의 관계가 불안정한 위기의 시대 복수라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는 것! 위기를 복수라는 것으로 형상화 멜랑꼴리 우울증 흑담즙병 불행한 감정을 느끼는것 환영을 보게하고 자살로 유도하는 것 종교개혁 전 사물이 악마의 장난인지 신의 계획인지 카톨릭에서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얼굴과 그림을 보면 됬는데 이제는 성경을 보라그러고 성경을 읽으라고 하고 제대로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구원을 받은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오는 모든 현상들이 악마가 만들었는지 신이 만들었는지 판단해야 하는 것을 개개인에게 주어짐 면밀히 나를 들여댜 보는 과정이 햄릿의 과정 그것이 바로 어렵다. 멜랑꼴리에 빠지기 쉬움 모호하다, 애매하고 어둡다. 어쩔줄 모르겠다. 인식의 불안 시대의 병을 내가 앓고 있다. 위기의 산물, 혹은 표현으로써 그것의 정점의 독백.. |
살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구나 난폭한 운명의 화살과 돌팔매질을 정신으로 견딜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와 전쟁을 벌이고, 저항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것인가. 어느쪽이 더 고결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뿐 한번 잠으로 인간이 물려받은 마음의 아픔과 수천가지 육 신의 고통을 끝낼 수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간절히 원해야 할 종결이 아닌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잠자는 것은, 어쩌면 꿈꾸는 것, 그래, 거기서 걸리는것 우리가 이 인간 육신을 벗어 던졌을 떄, 그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찾아올 것인지, 그 의문이 우리를 가로막느낟 그 염려 때문에 불행한 삶을 그처럼 오래 참으며 이어가는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누가 견디려 하겠는가? 세상의 채찍과 능멸을, 강압자의 비행과 교만한 자의 무례, 멸시 당한 사랑의 아픔, 법률의 태만, 관리들의 오만과 훌륭한 사람들이 형편없는 자들로부터 당하는 박대를? 단도 한 자루로 자신의 삶을 청산할 수 있는데? 누가 이런 짐들을 걸머지고 고단한 삶을 살며 끙끙대고 땀 흘리려 하겠는가? 죽음 뒤에 찾아올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한 번 경계를 넘어서면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 미지의 나라가 우리의 뜻을 마비시키고, 알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향해 달려가느니 차라리 당장의 불행을 견디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이렇게 판단력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든다. 그래서 이렇게 결의의 본래 혈색은 우울의 창백한 빛깔이 덧칠해져 병색으로 변하고, 높은 기개와 중요성을 가진 활동도 이 생각 때문에 제 불길에서 벗어나 행동이라는 이름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3막 1장 새로운 세상을 끝까지 들여다 보는것,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고통의 영웅 햄릿에 우리는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가? 우리는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인가? 습관이라는 베일이 겉어지는 순간 심연을 발견할 수도, 새로운 세계로 가는 다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이라도 덥석 갈 수 없다. 새로운 새계에 대해 망설인다. 그순간이 위기의 시기 그 새로운 세계가 과연 악몽인지 탐사하는 사람이 비극의 영웅이 된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어떤 일들을 고통의 영웅들이 가는 것을 보는 것 절대적인 윤리를 보는 것 비극의 영웅들이 고통을 끝까지 천착하는 것을 보는 것 절대적 윤리를 추구하는 것을 보는 것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읽는 이유....... 삶의 의미를 깊이 천착할 때... 삶속에 고통과 기쁨, 상대성과 절대성을 깊이 느낄때 우리는 비극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 이 보라고. 자네가 날 얼마나 형편없는 물건으로 생각하나. 자넨 날 연주하고 싶지. 내게서 소리나는 구멍을 알고 싶어 하는것 같아. 자넨 내 신비의 핵심을 뽑아내고 싶어해. 나의 최저음에서 내 음역의 최고까지 울려보고 싶어. 그렇다면 여기 이 조그만 악기 속엔 많은 음악이, 빼어난 소리가 들어 있어. 그런데도 자넨 그걸 노래 부르지 못해. 빌어먹을, 자넨 날 피리보다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무슨 악기로 불러도 좋아. 허나, 나를 만지작거릴 순 있어도 연주할 순 없어. 제3막 제2장 356 난 지금 멋대로 활보하는 이 근심에 족쇄를 채우려 하니까 제3막 제3장 25 그가 먹는 곳이 아니라, 먹히는 곳에서. 정치꾼 같은 버러지 한 무리가 회동, 이 순간에도 그를 차지하고 있지요. 먹는 데에는 구더기가 유일한 황제랍니다. 우린 우리가 살찌려고 다른 모든 짐승들을 살찌우며, 우리 자신은 구더기를 위해 살찌웁니다. 뚱보 왕과 마른 거지란 다양한 삭사에 불과한데 음식은 둘이나, 한상에 오르지요. 그렇게 끝난답니다. 제4막 제3장 19 모든 일이 사사건건 얼마나 날 꾸짖고 내 둔한 복수심을 찌르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판 主소득이 먹고 자는 것뿐이라면, 짐승 이상은 아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넓은, 앞뒤를 내다보는 사고력을 넣어주신 분꼐서, 그 능력과 신과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썩이라고 주신 건 분명코 아니다. 헌데 이 무슨 짐승 같은 망각인지, 혹은 결과를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는 비겁한 망설임인지- 그 생각을 쪼개봤자, 반에 반만 지혜이고 나머지는 비겁함이겠지만- 난 내가 왜 이건 하리라고 살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해치울 명분과 의지, 힘과 수단이 있음에도. 흙처럼 흔한 예가 날 훈계한다. 그 증거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왕자가 이끄는 이 대규모 호화판 군대를 보라. 그의 마음은 하늘 같은 야심으로 부풀어 예측 못할 결과 따윈 코웃음치면서, 죽기 쉽고 불확실한 목숨을 게딱지만한 땅 때문에, 온갖 운명과 사망과 위험에 내맡긴다. 진정으로 위대함은 큰 명분이 있고서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렸을 땐 지푸라기 하나에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난 어떤가? 아버지는 살해되고 어머닌 더럽혀지고, 내 이성과 내 혈기가 강력히 미는데도 모든 걸 잠재우는 한편, 창피하게도 이만 병사의 임박한 죽음을 보지 않는가? 그들은 명성이란 환상, 속임수 때문에 침실처럼 무덤으로 가며, 그만한 숫자가 시비를 가리거나, 전사자를 파묻을 묏자리로도 충분치 않은 땅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가? 오, 지금부터 내 생각이 피비리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제4막 제4장 31 https://youtu.be/LkfX4eviIBo 제 4막 제 5장 25 |
추가로 보는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재현 이미지 몇 개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햄릿'(1948)에서 진 시몬즈가 연기하는 오필리어의 익사 장면.
박졍현 뮤직비디오 '달'(2005)의 캡처 장면
보그 2011년 11월호에서 루니 마라가 재현한 새로운 오필리아, photographed by Mert and Marcus
출저: http://moonsoyoung.com/9018806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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