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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인문

<행복의 형이상학> 알랭 바디우, 2016

행복의 형이상학


첫째로 플라톤은 『국가』에서 진리에 이르는 경로 전반의 필수 조건으로 장기간의 수학 교육과 변증법적 논리의 지속적 훈련을 든다. 그리고 지배적인 의견들에 순응하기를 그만두고 오로지 사유가 "분유하는(participe)" 진리들을 신뢰하는 것만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증명한다. 수학과 논리와 행복의 관계는 전적으로 이 관계의 정합성을 보장하는 형이상학적 관점에 근거한다. 수학을 불가피한 전단계로 삼는 변증법(dialectique)은 곧 이성과 논리에 따르는 사유의 운동이ㅕㅁ, 이 운동은 원래 그말의 의미에서'형이상학적(meta-physique)'이라 평가될 수 있기 떄문이다.(그것은 과학적 자연학(physique scientifique)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이른다.) 다시 말해 수학에서 변증법으로, 그리고 변증법에서 행복에 이르는 귀결이 옳다면, 우리는 이러한 귀결에 대한 완전한 사유를 '형이상학적'이라 명명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진리들에 이르는 모든 통로를 가리키는 틀림없는 표지이며 따라서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의 실재적 목적이기에, 진리로 향하는 도정과 그 도정에 관한 완전한 성찰이 행복의 형이상학을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스피노자는  『에티카』ㅇ서 수학이 없었다면 인간 동물은 영원히 무지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단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수학이 아니라면 스피노자의 용어로 "적합한 관념(idee adequate) 자체를 향한 통로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행복(스피노자는 훨씬 강한 의미의 라틴어 "지복(beatitudo)"을 쓴다.)은 참된 사유의 실천, 곧 미덕과 다름없는 것이다. "행복은 미덕의 보상이 아니라 미덕 그 자체이다." 달리 말해서 행복은 참(Vrai)의 정동(affect))으로, 수학이 없다면 실존하지 않으면 먼저 증명되지 않는다면 직관으로도 농축될 수도 없다. 다시 한번 수학과 논리는 지성적 직관을 통해 완벽하게 행복의 형이상학이라 명명될 수 있는 것을 구성한다.

요컨데 모든 철학은 일종의 행복의 형이상학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복잡한 과학 지식이나 혁신적인 예술 작품이나 혁명적인 정치나 강렬한 사랑으로 지탱된다 하더라도, 철학에 드는 수고의 시간은 아무가치도 없다. 증명, 사고의 일반 논리학, 형식론의 이해, 새로운 시에 대한 주의 깊은 독해, 위험한 대중 집회 참여, 보장 없는 사랑이라는 피하고 싶을 법한 시련이 사유와 삶에 부과되는 까닭이란 결국 이 모든 것이 참된 삶의 실존에 필수적이기 떄문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우리 철학자들은 랭보가 부재한다고 말한 참된 삶을 옹호하며, 그런 것은 절대로 존재자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비바보(non-dupe)들의 그 모든 회의주의와 견유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무익한 빈정거림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 책은 이러한 확신에 관한 나 자신이 해설이며, 앞으로 네 차례로 전개될 것이다.

먼저 1장에서는 나는 철학이 시대에 명령에 대답할 수 이싿면, 오늘날 무엇이 철학의 관심사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결정에 착수한다.

2장에서 나는 무엇이 우리에게 그러한 철학의 욕망과 행복을 연결하도록 가르치는지 해명하기 위해 반철학을 이야기 한다. 반철학이란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니체, 비트겐슈타인, 라캉 같은 일군의 뛰어난 저술가들로 예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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