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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철학

변신론 - Gottfried wilhelm leibniz


Gottfried wilhelm leibniz - 변신론

 

95.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는 이에게는 결코 필요한 은총이 거부되지 않는다."

 

105.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똑같이 악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하고 덜 악한 자연적 자질을 통해 구분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은 결코 비슷한 방식으로 악하지 않다. 예정 조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영혼들 사이에는 근본적이고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선이나 저러한 악에, 혹은 그 반대에 더 끌리거나 덜 끌리고, 모든 것은 그들의 자연적 경향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상위의 근거를 통해 신이 선택한 우주의 일반적 구도에 따르면 인간들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자연


적 기질에 보다 유리한 상황을 맞이하는 이들은 더 쉽게 덜 악한 사람이 되고, 더 덕이 있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신이 그런 상황에 결합시키는 내적 은총의 영향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흘러가는 과정에는 더 탁월한 자연적 기질을 가진 자가 문화나 기회가 없어서 덜 성공하는 일도 때때로 일어난다. 인간들이 선택되고 분류되는 것은 그들의 탁월성이라기보다 그들이 갖는 신의 구도와의 합목적성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어떤 건물이나 배합에서 덜 좋은 돌이 비어있는 부분을 정확히 채워주기에 그 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106. 우리가 몇몇 가정에 전적으로 매달릴 필요가 없는 이성의 이 모든 시도들은 결국 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수단이 있음을 파악하게 해줄 뿐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곤란함, 우리가 해결하는 모든 논박,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난점은 신의 지혜만큼 드높은 것이 없고 신의 판단만큼 정의로운 것도 없으며 신의 성스러움만큼 순수한 것도 없고 신의 선만큼 광대한 것도 없다는 점을, 비록 증명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없을지라도 합리적으로는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막지 못한다. 이는 내가 이미 제시한 것이고 앞으로 더욱더 드러날 것이다.

 

123. 만일 우리가 신의 나라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다면,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국가 중 가장 완전한 국가이며 이 국가에서는 가능한 최선의 법칙에 따라 덕과 행복이 군림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이 악을 더 큰 선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악에서 영광을 얻어냈다면, 신은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국가를 전복하고 다시 바로 잡음으로써 명예를 얻는 군주의 영광 같은 거짓 영광이 아니다.

 

124. 신이 악덕을 허용했기 때문에, 악덕은 다른 모든 구도보다 더 좋은 구도로 인정된 우주의 질서가 요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더 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르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가정적 필연성, 도덕적 필연성이며, 자유와 대립되기는커녕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이성에 대립되는 것을 행할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모호한 사유들은 지속과 연장에 따른 만물의 상호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없는 이성적 피조물은 없으며 물질과 전적으로 분리된 참조된 정신도 없다.

그러나 이 유기체적 육체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정신들의 차이만큼 완전성에서 서로 차이가 난다. 따라서 신의 지혜는 물체들의 세계, 즉 지각 능력은 있으나 이성능력은 없는 실체들의 세계를 필요로 했고, 결국 만물 중에서 전체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을 선택해야 했으며 그러한 와중에 악덕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신이 악덕을 배제했다면 신은 완전하게 선하고 관전하게 지혜롭지 않았을 것이다.

 

=> 신은 유일. 금지시키는 것. 피조물은 신에 비해 불완전. 피조물의 완전성의 차이가 남. 신은 항상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을 선택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악이 포함된 것. 오히려 악덕을 배제한다면 신이 완전하게 선하고 지혜롭지 않다는 것.

 

132. 나는 자유롭다는 것과 무차별적이라는 것을 좋은 것으로 보지 않으며, 자유롭다는 것과 결정된다는 것을 대립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한쪽보다 다른 쪽이 더 끌리고 따라서 그쪽으로 결정되지만 결코 우리의 선택이 필연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필연성은 절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필연성이다. , 즉 현자는 도덕적 필연성에 의해 최선을 향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제

 

머뭇거리는 나의 정신은 섭리에 대한 신앙과 맹목적인 운에 맡겨진 세계의 관념으로 자주 나누어졌다.

 

149. 나는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이루는 파란만장한 인간 삶이 무한히 많은 다른 것들과 함께 신의 지성안에서 전적으로 만들어졌고, 오로지 그러한 삶이 현존하도록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이 내려진 것은 그 안의 사건들의 계열이 최선을 산출해 내기 위해 나머지 것들과 가장 일치하기 때문임을...

 

 

지성 의지

지성은 악의 원리를 제공하되 그 때문에 손상되지도 악해지지도 않는다. 지성안에는 악이 허용된 이유가 담겨져 있으나 의지는 오로지 선을 향할 뿐이다. 능력은 더군다나 지성과 의지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은 지성이 제시하고 의지가 요구하는대로 행동한다.

 

 

?? 175. 사건은 그 제체로 선택 될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선호될 만 하도록 우주의 전체계열과 연결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일어날 일이 신의 지혜와 무관하며, 따라서 그 일이 필연적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거짓을 가정하는 것이며 잘못된 방식으로 참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신의 경향 -> 선 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산출할 것

경향성 평형의 무차별성

 

200. 최선의 체계는 항상 물체와 육체들, 즉 장소와 시간에 ᄄᆞ라 배치된 사물들의 체계, 그리고 물체와 육체들을 표상하고 지각하는 영혼들의 체계, 즉 대부분의 물체와 육체로이 영혼들과 부합하여 지배되는 영혼들의 체계일 것.

 

결과적으로 종속관계가 존재하며 하나이 물체나 육체, 하나의 실체는 다른것에 봉사한다. 따라서 그들의 완전성을 동일 할 수가 없다.

 

208. 가장 지혜로운 자는 수단도 일정한 방식으로 목적이 되도록, 즉 단지 그것이 이루어 내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의 존재 자체를 통해서도 원할 만한 것이 되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하기 때문이다. 더 제대로 사용할 수 있던 것 보다 복합적인 방법들을 너무도 많은 영역, 너무도 많은 공간, 너무도 많은 장소, 너무도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09. 완전성은 지성적 피조물의 도덕적 선과 물리적 선 뿐만 아니라, 단지 형이상학 선 그리고 이성이 결여된 피조물들에게도 관련된 선을 또한 포함

 

ex) 인간 육체

"모순을 함축하지 않는다“ <-> 실존

뭘말하고 싶은거였니??..

 

신은 가능했던 것 중 최선을 행하며 자신이 행한 것 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고 주장

 

228. 최선은 모든 계열, 결과, 방법을 포함한다. 선은 신을 필연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면서 최선을 창조하도록 한다. 선은 그것이 신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지 않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숙명이라 부른다면, 이는 자유와 대립되지 않는 좁은 의미로 숙명을 이해하는 것이다. 숙명(Fatum)말하다, 발음하다라는 뜻의 Fari에서 온다. Fatum은 신의 판단, 결정 그의 지혜의 판결을 의미한다.

 

신은 완전

신은 자신이 영광을 드러낼 수 없는 모든 수단을 사랑. 악은 선의 부재에서 온다.

모순마저 사랑 허용

Fatum 숙명. 자유의지 and 선택권은 주되???

경향성 선으로 향하려는 경향성

 

창조의 결정은 자유로운 것. 신은 모든 선을 향한다.

선 더 나아가 최선이 신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이끈다.

 

x 형이상학적 필연성?

o 도덕적 필연성? => 가장 지혜로운 자가 최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

 

230 악은 무수히 많은 수단 가운데 가장 약한 것.

 

3

 

293 “철학자들은 대부분 오류에 빠졌는데, 어떤 이들은 자유로운 행동과 신의 섭리 관계를 이해 할 수 없어서신이 자유의지의 제일 작용인임을 부정하는 신성모독을 저질렀고, 다른 이들은 신의 작용력과 자유로운 행동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인강늬 자유를 부여받았음을 부정하는 불경을 저질렀기 때문에 오류에 빠진 것이다.

 

인가의 행동 <-> 신의 섭리

 

저열하게 철학을 즐기면 우리는 신에게서 멀어지지만, 깊이 있게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인도된다.

- Francis Bacon

 

300. 예정 조화 체계의 확립은 자연의 진행과정에서 각 실체는 자기의 모든 행동의 유일한 원인이며, 신의 통상적 협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실체의 물리적 영향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있음을 명백히 밝혀준다.

 

309. 그 평형이라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자유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우월하다. 내가 말하는 자유는 항상 정신의 판단을 따르고 선한 것으로서 명확하게 인식된 것에 저항할 수 없는 자유이다. 나는 명확하게 인식된 진리가 영혼의 동의를 필연적으로 일으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진리가 지성의 대상인 것처럼 선은 의지의 대상이며 지성은 오직 진리의 모습으로 제시되는 것만을 긍정할 수 있듯이 의지는 오직 선하게 나타나는 것만을 좋아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거질을 거짓 자체로서 믿을 수 없으며 결코 악을 악 자체로서 좋아할 수 없다. 지성에는 진리 일반과 명확히 인식된 각각의 개별적 진리로 향하는 자연적인 결정이 있다. 의지에는 선 일반으로 향하는 자여덕인 결정이 있으며, 이로부터 여러 철학자들은 개별적 선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인식될 경우 우리는 그것들을 필연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지성은 대상이 모호하게 나타날 때만 자신의 행위를 보류하며 이에따라 대상이 거짓인지 참인지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여러 사람들은 영혼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상이 선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만 의지가 평형 상태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정신의 다른 판단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과 결부된다고 그들은 또한 결론을 내린다. 그 같은 식으로 자유를 설명하는 사람들은 공적과 허물에 대한 꽤 포괄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의 그러한 판단은 영혼이 대상들을 검토하고 전체적으로 비고하여 판별하고자 자유롭게 노력하는 데서 유래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언제나 지성의 최종적인 실천적 행위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