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발견의 논리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라는 것은 대단한 권위를 누리고 상당한 신뢰를 받는다. 과학적이라고 하면 상당한 신뢰를 받으며 비과학적이라고 하면 비하하는 말이된다. 그만큼 과학적이란 말은 절대 중립적인 평가는 아니다. 우리는 과학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과학 지식이란 관측이나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증명이란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수학에서 증명한다는 것은 영원하다. 그러나 과학이론은 계속 바뀐다. 한 때 믿던 이론도 폐기 되기도 한다. 과학이론이 바뀌는 이유는 제대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완벽히 증명이 안되도 과학적 검증이 된 것은 뭔가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뭔가 믿을만하고 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른점은 무엇일까?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칼포퍼의 생각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할때마다 우리의 해결안을 방어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뒤집어 엎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데 있다.
1. 구획(demarcation) 기준의 문제
포퍼에게 있어서 구획의 문제란 과학과 과학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의 문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구획의 문제는 예전 귀납주의자에 의해서 먼저 논의 되었다.
1) 귀납주의 구획기준
역사상의 경험론에 입각한 귀납주의 전통에서는 구획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즉 확고한 사실을 기술하는 명제들과 그것들을 귀납적으로 일반화한 명제들만이 과학적인 것이다. 귀납주의자들을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과학적인 것들과 과학적이 아닌것들을 구분하였다. 하지만 이기준의 난점은 귀납적 증명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에게 비과학이란 한계점을 부여했다. 인간의 감각으로 검증 할 수 없는 과학적 문제들이 등장하고 만 것이다.
첫 번째로 확고한 사실을 기술하는 명제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관찰, 언어, 귀납의 규칙, 원리란 없다. 우리의 모든 관찰이 이론 의존적이라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바다. 감각 자체가 현실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각기 다른 이론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르게 해석한다.
[사진1]
위 [사진1]은 비트겐 슈타인의 오리-토끼 사진이다. 관찰자에 따라서 오리처럼 보이기도 하며 토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현상은 과학에서는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귀납주의 구획 기준의 토대 중 하나는 쉽게 무너진다.
두 번째 문제는 귀납적 일반화의 문제다. 이것은 흄도 지적한다. 먼저 귀납주의자의 이론이 일반화 되기 위해서는 관찰 언명은 수적으로 많아야 하며, 관찰은 다양한 조건 아래서도 반복될수 있어야 하며, 받아들여진 어떤 관찰도 도출된 보편 법칙과 모순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그러나 아무리 관찰 언명의 수가 많더라도 그것이 과학 이론을 구성하고 있는 보편 언명을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도출할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보편 언명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전 과거의 백조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의 백조를 일일이 조사해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검은 백조라는 단칭언명이 발견되면 이 보편 언명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결국 유한 수의 단칭 언명을 통해 무한한 숫자의 단칭언명이 함축되어 잇는 보편 언명을 정당화 시킬 수 없으며 귀납 추리에는 항상 귀납적 비약이 수반하게 된다.
2) 구획의 기준으로서의 반증 가능성의 원리 (책에는 허위화 가능성 falsifiability라고 명시되어있지만 현대에 반증으로 널리쓰이기에 반증이라고 하겠습니다.)
포퍼가 반증 가능성 원리를 구획의 기준으로 제시하게 된 것은 1919년 아이슈타인의 과학에 대한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빛이 무거운 물체주위를 지나가면 휘인다)이 가혹한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이론을 포기하겠다 라고 공언한다. 이후 에딩튼(영국 천문학자)가 그 이론의 예측을 확증시켜주었다. 당시 유행했던 마르크스주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나치주의가 될 인종주의자의 심리학 등 다들 자기가 신봉하고 있는 이론을 주장하며 부정적인 실험 결과와 관찰들을 재해석 하여 그들 이론에 통합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포퍼는 이론을 엄격한 시험에 내놓은 아이슈타인을 보고 참된 과학이론이란 비판적 테스트에 스스로를 드러내 놓고 반증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반증될 수 없는 이론이란 과학 이론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학을 구성하고 있는 보편 언명으로 된 법칙들은 단칭 언명들의 집합에 의해 검증될 수 는 없지만 부정적인 단칭 언명에 의해 반증될 수는 있다. 아무리 흰 백조를 관찰 하였더라도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보편 언명을 검증 할 수 없지만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발견되기만 한다면 이 보편 언명의 참됨을 반증할 수는 있다.
포퍼는 경험에 의해 반증될 수 있는 이론의 체계만을 과학으로서 인정해야한다는 반증가능성의 원리를 구획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어떤 이론의 체계는 최소한 논리적으로라도 반증 가능해야 과학이라고 인정될 수 있다. 수학이나 논리학, 형이상학과 같이 원리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한 것은 경험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포퍼는 반증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론들을 잠정적으로 참된 이론(tentative theory)으로 보고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구획이란 과학과 사이비 과학 또는 과학 아닌 것(sicence/psuedoscience or nonscience)사이의 구분이지 과학과 형이상학 사이의 구분이 아니다. 한편 형이상학은 결코 무의미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과학 발전을 위한 첫 단계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구획의 기준으로서 반증가능성의 원리는 반증 가능성의 정도가 높은 이론일수록 더 경험적 내용이 풍부한 좋은 이론이라는 결론을 수반한다.
ex1)
1. 눈이 올 것이다.
2. 내일 눈이 올 것이다.
3. 내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 눈이 올 것이다.
4. 내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 5cm의 눈이 올 것이다.
1~4로 갈수록 구체적인 경험적 내용은 풍부해지지만 그것이 참이 될 수 잇는 확률이 줄어든다. 과학 이론이 가능하면 더 많은 경험적 내용을 가진 것 이여야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곧 반증 가능성이 높은 이론을 선택함으로써 더 좋은 이론을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다.
ex2)
빛의 속도는 1초에 대략 30만km이다.
빛의 속도는 1초에 300,132km이다.
전자와 비교해서 후자가 더욱 정확하고 반증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를 측정하여 그것이 300,130km라는 결과를 얻었을 때, 이 결과가 후자를 반증하지만 전자는 반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반증 가능성이 높은 이론을 선택함으로써 더 좋은 이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과학 이론이라면 그것이 확실하게 반증될 수 있도록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술되어야 한다는 흥미로운 귀결이 수반하게 된다. 주장하는 바가 분명할수록 그것이 반증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보다 더 좋은 이론인 것이다. 따라서 조금은 빗나갔으나 분명한 명제가 참인 듯 하나 애매한 명제보다 좀더 사용가치가 잇는 것이다.
질문) 칼포퍼는 형이상학에 대하여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과학 발전에 있어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실례로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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