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아의 형성
상당부분 동일시를 통해서 형성되며 이드에 대해서 버려진 리비도 집중을 대신한다. 동일시 중 첫 번째 것은 항상 자아 속에서 특별한 실체로 행동하고 초자아의 형성 과정에서는 자아와 떨어져 존재한다. 후에 자아가 더 강해짐에 따라 그러한 동일시의 영향에 대해 자아는 더 저항적이 될 수 있다.
◉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초자아의 위치
초자아는 첫 번째 동일시의 산물이고 자아가 연약할 때에 생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후예이고 따라서 자아 속에 가장 중대한 대상을 도입했다. 초자아는 일생을 통해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유래된 데서 오는 특성, 즉 자아로부터 떨어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존한다. 자아도 초자아의 지상명령에 복종한다.
초자아는 항상 이드와 가까이 있고 자아와 직면해서는 이드의 대변자로서 행동 할 수 있다. 초자아는 이드 깊숙이 영향을 미치며 자아보다 의식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 죄의식에 관하여
정상적인, 의식적인 죄의식(양심)은 자아와 자아 이상 사이의 긴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자아의 비판 세력에 의해서 자아에 내려진 유죄판결의 표현이다. 강박신경증과 우울증의 경우 죄의식이 강력하게 의식되어, 자아 이상이 특별히 가혹하게 작용하고 자아에 대해서 잔인해진다.
1) 강박신경증의 경우, 죄의식이 지나쳐서 자아에게 죄의식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죄의식의 밑바닥에는 억압된 충동이 발견된다. 이 경우 초자아는 무의식적 이드에 대해서 자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 우울증의 경우, 초자아가 의식을 장악하고 있지만 자아는 감히 반대를 하지 못한다. 그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감수한다. 강박신경증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 자아 밖에 있는 못마땅한 충동이었던 반면, 우울증의 경우는 초자아의 분노의 대상이 동일시를 통하여 자아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3) 히스테리의 경우, 초자아의 비판이 자아를 위협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지각을 피해간다. 그것은 자아가 억압의 행위에 의해서 참을 수 없는 대상 리비도 집중을 피해 가는 습관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무의식적 죄의식에 대해서 책임 있는 것은 바로 자아이다.
4) 양심의 기원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이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속하므로, 죄의식의 대부분이 무의식적 상태로 남아 있다. 많은 예에서 죄의식은 범죄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인 것이다.
5) 죄의식의 탐구를 통해서 초자아는 의식적 자아로부터는 독립성을, 무의식적 이드와는 밀접한 관련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초자아가 본질적으로 죄의식으로서 자기 자신을 현시하고 자아에 대해서 가혹하다.
우울증의 경우, 초자아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자아에 대해서 난동을 부린다. 초자아는 관련 사람에게서 가능한 사디즘의 전부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초자아의 지배적 세력은 죽음 본능이다.
어떤 형태의 강박신경증의 경우, 양심의 가책은 고통스럽지만 자기 파멸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아의 안전은 대상을 보유함으로써 가능하다. 사랑의 충동이 대상에 대한 공격충동으로 변하는 것은 전성기기 조직으로 퇴행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파괴본능은 고삐가 풀리고 대상을 파괴하려 들거나 적어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목적들은 이드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초자아는 자아가 그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무력한 자아는 살인적인 이드의 부추김과 벌주는 양심의 가책, 양쪽에 다 같이 대항해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그 결과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궁극적 대상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의 행위를 제어하는데 성공한다. 사랑을 공격성으로 분열시키는 일은 자아가 한 것이 아니고 이드 속에서 일어난 퇴행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이드를 넘어 초자아에까지 미치고 자아에 대해 그 가혹성을 더해 간다.
◉ 본능의 통제라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드는 전혀 무도덕적이고, 자아는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며, 초자아는 초도덕적인 동시에 이드만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잔인성을 발휘할 수 있다. 도덕은 가혹하게 억제하고 잔인하게 금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가차없는 징벌을 수행하는 고등 존재의 개념이 생겨난다.
◉ 자아는 외부세계, 이드의 리비도, 초자아의 가혹함에서 오는 위협을 받고 있다. 자아는 세계와 이드를 중재시키려 하고, 이드로 하여금 세계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하며, 힘찬 활동으로 세계가 이드의 바람에 부응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아는 실제 세계를 주목하는 가운데 자신을 이드에 대한 리비도적 대상으로 제공하고 이드의 리비도를 자신에게 부착시키려 한다. 자아는 이드의 조력자일 뿐만 아니라 주인의 사랑을 구하는 복종적 노예이기도 하다. 자아는 이드의 <무의식적> 요구를 자신의 <전의식적> 합리화로 치장한다. 자아는 이드의 현실과의 갈등, 초자아와의 갈등을 숨긴다.
◉ 두 부류의 본능에 대한 자아의 태도
동일시와 승화 작업을 통해서 자아는 이드 속에 있는 죽음 본능에게 리비도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준다. 이에 자아는 죽음 본능의 대상이 되어 멸망한 위험을 무릅쓴다. 이 과정에서 자아는 자신의 리비도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자아는 에로스의 대변자가 되고 그 후부터는 살고 사랑받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의 승화 작업이 본능의 분열과 초자아 속에 있는 공격적 본능의 해방이라는 결과를 낳으므로, 자아의 리비도에 대한 투쟁은 자신을 학대와 죽음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초자아의 공격 하에서 자아는 원생생물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분해 산물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 공포와 자아
자아는 외부세계, 이드의 리비도, 초자아의 가혹함의 위험으로 협박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아는 위협적인 지각이나 그에 비견할 만한 이드 속의 과정에서 자신의 리비도 집중을 철회하고 그것을 불안으로 발산시킴으로써 도피 반사 기제를 작동시킨다. 이러한 원시적인 반작용은 후에 보호적 리비도 집중의 성취(공포증의 메커니즘)을 통해 대치된다. 초자아에 대한 자아의 두려움, 양심 불안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거세를 시키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는 존재이다.
죽음의 공포에 대한 메커니즘은 자아가 다량으로 자신의 나르시즘적 리비도 집중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아가 불안을 느끼면 자신을 포기한다. 죽음의 공포는 자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자아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 다시 말해, 여기서 다시 이드의 대변자로서 등장하는 초자아에게 사랑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죽음의 공포를 거세불안에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통의 신경증적 불안이 심한 경우에 자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안(거세, 양심, 죽음의 공포)에 의해 더 강화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다.
◉ 이드와 자아
이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없고 통합된 의지도 가지지 못한다. 에로스와 죽음 본능이 그 속에서 투쟁한다. 이드는 말이 없으나 막강한 죽음본능의 지배하에 있으며, 죽음 본능은 에로스를 잠자코 있게 만들려고 한다. 다소 에로스를 과소평가한 설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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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도덕 그리고 사회감정 - 인간 고차원적 측면의 주요한 요소들-은 원래 동일한 것이 였다. 이것들은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계통 발생적으로 습득된 것 이였다. 즉 종교와 도덕적 억제는 오이디 콤플렉스 그 자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사회적 감정은 그 당시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 사이에 남아있던 경쟁심리를 극복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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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로이트에 의하면 도덕은 오이디 콤플렉스에 의해 학습 또는 습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덕은 부모님의 학습에 의해 생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요? 양심과 도덕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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