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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인문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4> 양정무, 2017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4』 - 양정무 지음




로마네스크 

고대 로마풍 양식 + 기독교 사상

로마시대 때의 양식을 따름(신화 속 신 조각상이 기독교 인물로 바뀜)

성지순례가 활발해 지면서, 성지와 주요 거점에 성당이  건축됨

배경

11C 밀레니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짐 (우리도 2000년이 될 때 세계가 멸망한다고 했음) 새천년이 되었어도 변화가 없었음. 그것에 대한 감사, 속죄에 대한 성지순례를 하게 됨. 그래서 성지의 입구에는 영광의 문, 지옥도, 성화들이 많음

중세시대가 되면서 안정적 생활을 하게 됨

이슬람에 대적하기 위해 교황이 성지순례 독려


순례 열풍과 함께 발전한 도시에는 순례객을 수용하가 위한 성당이 필요했다. 당시 지어진 성당에는 순례객을 배려하는 원형 회랑과 소혀 예배당 등이 마련됐다. 이 때 유행한 로마네스크 양식은 아치를 많이 활용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원인 

순례지로 모여드는 인파를 수용하기 위한 종교 시설의 필요성

결과

많은 노동력의 투입과 함께 마을 및 도시에 경제적 활력이 생김

11세기 전후로 아름답고 유명한 대성당들이 지어짐 ex)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새로운 미술 양식인 로마네스크 탄생 배경이 됨


프랑스의 네 갈래 길

프랑스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네 갈래 길

각각 파리, 베즐레, 르퓌, 아를에서 출발




사를마뉴의 통치 -> 고대 로마제국의 영토 대부분 차지

봉건제 - 사회의 안정, 통합

   +

기독교 -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마음 지배, 봉건제에서 영주의 힘이 강에짐에 따라 왕의 권위와 정당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생김


의미

고대 로마풍 양식 + 기독교 사상



특징

클로이스터

성화조각(팀파늄)을 통해 신앙심 고양

두꺼운 벽과 아치형 기둥, 십자가형 건축구조

Ref)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화려한 장식의 영광의 문, 중앙계단, 소형 예배당, 원형회당 (순례자들을 위한)


노르만 미술

바이킹은 8세기 말에 역사에 처음 등장한 이후 급격히 세력을 키웠다. 유럽 대륙을 휩쓸며 약탈을 이어간 바이킹은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노르만족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약 200년뒤 영국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받아들여 독특한 노르만 미술로 발전시켰다.


8~9C 약탈 

10C 정착(노르망디)

11~12C 정복


보르군 목조교회 : 눈많이 내리는 지역 지붕이 경사짐


몽생미쉘 노르만족이 로마네스크 양식들 받아들여 지은 건축물

로마네스크 반영


생테티엔 늑공궁륭 최초 사용 윌리엄 공작의 주도로 캉에 지어진 쌍둥이 교회



생트 트리니티성당 윌리엄 공작의 주도로 캉에 지어진 쌍둥이 교회



쌍둥이 교회



고딕 미술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에 살고 있던 이들이 동방의 선진 문화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수많은 십자군이 이동하면서 피사와 베네치아 등 많은 도시가 발전했다. 그 결과로 피사 대성당, 산 마르코 대성당 가튼 아름다운 건축물이 탄생했다.


12C 십자군 전쟁 중반부터 나옴

십자군 전쟁 12~13C 

교황 vs 왕 주교 임명권 다툼

셀주크투르크(이슬람) -> 비잔틴 제국 공격 -> 로마 교황은 동로마 보다 우위를 갖기 위해 참전함


영향

콘스탄티노플(하기아 소피아) -> 화려함, 석조건축, 황금모자이크

이슬람 -> 과학지식, 수학, 천문, 지리, 의학, 고대그리스, 과학철학 보존되어있음


피사 파리로부터 십자군 원정 경로기 때문에 발전



마르코 성당 아치형, 황금 모자이크, 아기야 소피아와 비슷 네 팔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형태이며 다섯개의 돔이 있음. 내부가 화려한 모자이크화로 장식됨 ->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



하기아 소피아




고딕의 개념

사실 '고딕'이라는 표현은 후대 이탈리아 사람이 만든 말. 중세시대에는 라틴어로 '오푸스 모데르눔'이라고 일컬었는데 '현대적 양식'아리고 불리움. 프랑스 밖에서는 '오푸스 푸란키제움', 즉 프렌치 스타일 이라고 불림. 이때는 프랑스하면 고딕 성당이 떠올랐음.

컴퓨터 글씨체로 익숙한 고딕은 단호하고 딱딱한 이미지. 선의 굵기가 일정하고 곡선이 없이 딱딱함. 그러나 고딕 성당은 밝고 경쾌함. 사실 고딕이라는 용어는 고트족의 양식을 뜻함.  고트족은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의 상징이였기 떄문에 야만적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다. 그러나 비자리라는 16세기 이탈리아 비평가가 처음으로 중세 건축 양식이라고 사용했다. 르네상스 이후 시기 이탈리아 사람의 눈에는 알프스 산맥 너머 유럽에서 유행했던 중세 성당이 야만적으로 느껴짐


베드로 대성당, 1506~1626 바티칸



쾰른 대성당, 1248~1880, 쾰른


이탈리아처럼 주위에 여전히 로마 유적이 남아있고, 고전 그리스 건축을 계승한 베드로 대성당과 비교하면 뾰족하게 솟은 첨탑과 밖으로 들어난 골조들이 불안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


중세 고딕 성당은 지상에 천국을 재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중세인들은 성당에 들어갈 때 천국에 들어선 느낌을 받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매우 다른 고딕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켰고, 고딕 성당은 오늘날까지 천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시각적 측면 

색색의 조각 유리를 통과한 빛이 건물 안으로 들어옴 내구가 매우 밝고 화려하게 보임

ex) 스테인드글라스

- 청각적 측면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퍼저나가 엄숙함과 웅장한 울림을 경험하게 함

ex) 뾰족한 아치형 천장, 석재 사용


고딕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작용

사회적 요인 : 도시 발달, 시민의식 형성

경제적 요인 : 부의 축적, 집약된 노동력

문화적 요인 : 신앙심, 지역에 대한 자부심


중세 고딕 건축은 많은 비용이 필요했음, 왕과 제후의 기부 뿐만 아니라 세금이 필요했음. 중세 도시가 성장하면서 상업이 활발해지고, 농노와 유랑민들이 직업을 찾기 위해 몰려옴. 농노들은 도시의 장인, 상인, 벽돌공, 건축가, 목수들로 변화함.  도시가 성장하며 영주들은 사치에 더욱 신경쓰면서 아랍과 비잔틴의 진귀한 물건들이 쌓이고 건축에도 활용됨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물질은 가능한 아름답고 가치 있어야 한다."

- 쉬제르


고딕의 3요소

첨두아치(뾰족한 아치) : 고딕 성당의 내부를 높고 넓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

늑골 궁륭(갈비뼈 구조의 둥근 천장) : 갈비뼈 구조 뼈대로 만든 둥근 천장.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천장으로 여러 모양의 볼트로 장식하기도 함

플라잉 버트레스(공중 부벽) : 고딕 성당의 크고 높은 벽을 지탱하기 위해 외ㅜ에 덧댄 벽, 일반 부벽과 달리 공중에 뜸

공중 부벽 

이로 인해 벽을 얇고 높게 세울수 있게 됨



스테인글라스 : 작은 색유리 조각을 끼워 아름다운 문양을 넣은 창.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음

ex) 생트 샤펠 성당,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미창



생트 샤펠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