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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설복> 박영선, 2019

 

하나님의 설복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생각으로 죄를 안 짓는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죄짓지 않게 만드시려고 처음에는 우리를 때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 알고 죄를 멀리하게 되는 수준에 오르는 것은 시간이 훨씬 지나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연단으로 이제 알 만큼 알기 때문에 죄를 못 짓게 되는 것입니다. -11쪽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하자 아브라함이 ‘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에게 얼마나 푹 빠졌으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설득당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복하기에 마땅한 분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가지십시오. -75쪽

평안할 때 우리들은 얼마나 그럴듯해 보입니까? 그런데 환난이 닥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내가 누구인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이것이 환난이 하는 적극적인 일들입니다. 환난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을 붙잡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주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그제야 비로소 생생히 기억하고 적용하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빼앗을 수 없는 기업을 바라보게 합니다. -92쪽

매일매일 기도 제목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진전하기 때문입니다. 진전하지 않고 한 군데에 머물러 있으면 기도할 내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거나 시비하지 말고 자기 신앙을 성장시키십시오. 시련에 맞부딪치는 데에서 오는 싸움, 그 진통이 없어서 시선이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나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96

어릴 때 ‘나는 왜 한국에 태어났는가’라며 짜증스럽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성장하니까 그것은 화를 내거나 섭섭해하거나 짜증을 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고 걱정할 것이 있다는 게 너무나 소중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08쪽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데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경우에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쪽으로 밀어붙입니다. 그가 곧 예수님이고 성령님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127쪽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완성의 자리를 지금 우리의 수준과 비교하는 습성이 있어서 ‘나는 너무 엉망이야. 나는 할 수 없어’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신자다워라’ 하는 이야기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진행하라’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5장과 6장은 우리에게 ‘결국에는 도달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합니다. -135쪽

사람이 자기 일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지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선택하는 길은 옳은 길이 아닙니다. 편한 길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 믿지 않은 자들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하도록 그 길이 막힌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막혀서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지, 우리가 선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닙니다. -156, 157쪽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다음이 아니라 현존하는 현실 순간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로 결단하고 돌이킬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 내시고 나를 항복시키시기 위해 나를 출생시키시고 사망하게 하시기까지 인생이라는 시간을 두셔서 그 시간 동안에 우리에게 이루실 일을 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칭의 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화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귀에 대고 말씀하시고 수없이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고 말씀을 듣고 보게 하시고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162쪽

외부에서 오는 환난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갈등으로도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교만해서는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것은 잘못이며 교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이에 대해 중요한 결론을 제시합니다.

-164, 165쪽

 

1. 복음의 필요성
복음에 대한 이해
자랑거리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음이라.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라는 시작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함으로 시작함. 하나님의 의와 믿음으로 의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가 복음을 알기에 복음을 자랑스러워 함
죄에 대한 이해
모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에 하나님 앞에 살려주십시오라는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는 입장임. 우리는 죄인이라는 상태를 잘 알아야 함.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이 죄를 처리하는 방법, 오해와 경멸 비참함 육체적 아픔과 영적 고통 -> 이에 대해 우리는 아픔을 통해 슬픔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만큼 철저하게 이를 갈고 계시는구나 생각해야 함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복을 확인하려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상태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필요
성경에 해석을 요구하는 이유
성경은 명령서가 아니라 해석이 필요로 하는 책. 성경은 인격자의 발언이기 때문
죄아래의 상태 -> 롬 1:28~31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인간이 저런 죄를 행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그런 죄를 짓는 수준에 있구나. 깨닫기를

 

2. 율법과 믿음
율법의 역할
롬3:19~20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시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꺠달음이라
: 구약에서는 분명히 율법을 제시하고 이것을 지키는 자은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는데, 실제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
그러나
롬 3:21~22(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수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원문 성경에는 그러나 라는 단어가 나옴
율법 외의 것
율법은 그것을 지키면 상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는 법칙. 내가 행한 결과에 대해 내가 책임지는 법칙이자 방법
은혜는 내가 행한 결과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 나에게 일어난 복된 결과가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
율법 행위 자랑 <-> 은혜 선물 긍휼
구원의 신비
기독교는 내세에 관한 일이며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일이며 영에 관한 것이기에 신비롭다.
요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결과로 보아 알 수밖에 없다고 함. 성경은 누가 구원을 얻는지에 대하여 '성령께서 감화 감동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함
신비주의자들은 그 구원에 자리로 넘어오는데 어떠한 방법이 있다고 함 믿으면 구원 얻는다 라는 방법도 잘못된 말
믿음에서 믿음으로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지 않는 자리에서 믿는 자리로 넘어오는 데에는, 자연세계에서 영원 세계로 넘어오는 데에는 결코 방법이 없음.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심
믿는 자리에 온 후 믿음(trust)이 동원이 되어야 한다. 제시된 율법에 순종하고 요구되는 행위들을 행하야한다. 그러나 못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 두 가지 믿음에 대해 혼동하게 된다면, 성장하기 어렵다. 평생 홍해 건넌 사건 하나만 붙잡고 있는 격. 성숙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하고 믿는 자리로 넘어와서 살아 내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을 명심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인식
구원을 사실로 인식하는가 경험으로 인식하는가? 대부분의 신자는 구원이 사실이기 때문에 좋아하기보다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에 좋아한다. 복음은 늘 하나님과 연관되어야 한다. 롬 3:25가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 몰로 세우셨으니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다는 것.
경험 위주의 구원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행하신 일을 신앙의 토대로 삼고 그 토대 위에 성장해야어야 한다.
3. 행위와 약속
구원의 순서
시간 배열: 구약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 신약 
계획 배열: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아담 -> 구약 -> 신약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
샘플이란 일부를 보여주는 것 하나님을 아는 백성,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 ->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라야 완성된다는 사실
구원에 대한 사실과 인식의 차이
구원이란 영적 감각이 생긴 것. 내가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필요함을 알게 되고 저주받는 것의 무서움을 알게 됨.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 -> 인식의 순서
실제 순서 주를 영접합니다라고 할 때 이미 내 안에 주가 들어와 계신 것.
은혜로써의 믿음
롬 3 은혜로 구원을 얻으니 우리의 행위는 아무래도 괜찮은가? 6장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 예수 믿는 문제에 대하여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2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 할례 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7~31)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다 -> 그럼 율법은? 행위로써의 율법은 자랑할 수 없다. 믿음의 율법과 행위의 율법을 대치되지 않도록 설명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3~5) 
원인 없는 결과
삯은 은혜가 아니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 삵. 은혜는 대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믿음이란 원인 없이 결과가 생기는 참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법칙. 아무리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구언받았다는 결과를 확증할 원인이 없다.               
구원의 증거인 하나님의 약속
구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단어는 '약속'이다. 내가 나를 완성시키는 것인지 다른 이에게 나를 완전히 맡기는 것인지의 싸움이다. '나의 영광을 위한 행위냐,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높으심에 대한 항복과 납득이냐'

4. 감각과 성숙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심
구원의 조건이나 우리에게 없음을 성경이 증명한다.
구원을 얻는 때는? 불의한 사람이 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시점, 그 과정을 통과해서 의로워진 시점, 불의한 상태에 있는 시점-> 불의한 상태에 있는 시점이다. 우리가 죄인일 때 구원을 얻는다. 시체에게 여기까지 오면 살려주겠다 말하면, 살아서 움직이는 시점? 여기 도착하는 시점? 아니면 그 전 시점이 살아난 것인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경건은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신앙의 성장 단계에서는 회개 없이 주어지는 용서가 없지만, 구원 문제에 대해서만은 조건 없이 용서를 받는다. 구원을 얻는 자체에는 우리에게 원인이 없지만, 구원을 얻은 다음부터는 우리에게 원인이 있다.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이요, 약속임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구원
성경은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대상. 성경은 객관적이지 않다. 내가 예수를 믿고 있을 뿐이지 믿게 된 근거는 없다. 근거가 없더라도 사실이라고 믿는다. 성경에 쎃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객관적이지 않다. 구원은 내가 시체임을 몰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시체였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내가 죄인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하고 감각할 수도 없는 부분을 감각하게 되는 것
감각의 차이
죄인들은 하나님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다. 신자는 하나님에 말씀에 반대하고 살지도 않고 도망가면서도 하나님 편에 손하나는 걸어놓고 가거나 귀하 나는 떼어놓고 간다.
구원의 인식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결과로 구원에 대한 인식을 구분
부활 사건의 의미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이제 우리는 죄인이 나닌 새 사람이라는 사실과 샛 ㅏ람으로서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 우리의 죗값을 위한 속죄 제물인 동시에 제사장이다. 롬 4:25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성장을 위한 믿음
믿음은 구원의 결과로 생긴 것으로 하나님을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이런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나는 그렇게 못하는구나.라는 인식이 필요함
신앙의 대상과 내용
모세는 하나님에게 말대답하고 뜻을 거부-> 신명기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을 자식 -> 예 하나님에게 얼마나 푹 빠지고 설득당했을까? 하나님은 우리가 항복하기에 마땅한 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신앙 이 신앙이 필요
성숙한 신앙 이해
믿음이란 구원의 결과로써 그다음 단계로 가는 데 원인이 되는 것이지 구원을 이루어 내는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건 없이 얻은 구원에 대해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결론지으면,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 사람은 택한 자, 저 사람은 택함 받지 못한 자라고 알게 된다면 전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가 없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포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분명한 결과를 갖게 된 사람들이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하나님은 보통 이런 식으로 일하시더라, 또 저런 식은 안 좋아하시더라'와 같은 감각이 늘어야 한다.
5. 칭의와 영화
칭의, 성화, 영화
'성화'는 거룩하게 되어 가는 과정 거룩해진 것은 성화가 아니라 영화다. 영화 단계에서 볼 때 성화 과정에 있는 사람은 많은 흠을 가지고 있다.
세상 사는 동한에 우리는 칭의와 성화 단계까지 경험할 수 있고, 천국 가서야 영화 단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조건없이 주신 믿음A, 주신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좇아가는 믿음B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지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다음에 나오는 구절임. 믿음을 애써 힘써라 가 아닌, 오히려 하나님이 손수 하신다 라는 내용
크리스마스가 두 달 밖에 안남았을 때 열심히 살면 빨리 오고 열심히 안살면 늦게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하루가 지나서 그날이 오는 것과 같이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라는 말은 내 노력과 관계없이 마침내 오고야 말 영광이 약속으로 주어진다는 것? -> 이상한뎅.. p82

구원의 확실성과 최종성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3~8)
이 대목의 핵심은 이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영광의 자리에 가고 말 것이다? 아마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 하고 소망을 이루는줄 알고 있는데 그 근거가 그리스도가 자신을 죽음으로 인해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 뭔가 비약이 큰데 이걸 믿는게 믿음인건가? 아니면 주장의 근거가 미약한것인가 아니면 내 이해력이 딸리는 건가? 무튼 저자는 구원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가 너를 무엇을 만들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관심은 목적에 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기독교인은 환난 중에도 기뻐 하는 것.

환난은 인내를
환난은 참는다가 아니라 굴곡이 없어진다 Constancy 견고성을 유지한다. -> 불혹이랑 비슷한 의미인듯. 평상시에는 신앙인으로서 다 아는 것 같고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인내할 수 있을 것 같고 언제든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언제든지 남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그것들을 하지 않아도 될 때 하는 생각이고, 정작 해야 하는 때가 오면 '할 수 없다'가 된다. 그제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얼마나 그렇지 않은가 그 때 비로소 발견하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다. 그제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는데 그것이 환난이 만들어내는 큰 기적이다. -> 예수님이 번화산에 기도하러 올라갔을때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두고 제자들이 안수, 기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제자들이 물으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조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2:29) 기도라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만 한다.
준비는 언제하는 것인가? 언제나 그 이전, 바로 오늘 해야 한다. 성경은 환난을 통해서 준비하게 한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인내가 연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위로를 받을 정도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일을 겪고서 즐거워하는 기쁨의 자리에 가는 것!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낸다. 신자의 신앙 수준은 결국 내세관에 달려있다 ->이건좀? p94
신자는 육의 것을 심어서 육의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고 사망도 없고 이별도 눈물도 없는 곳. 세상에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천국은 얼마나 더 즐거운 곳인가? 
매일매일 기도 제목이 바뀔 수 밖에 없다. 진전한다면, 내가 그렇게 살기 원한다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구하고 기도하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순종하는 자세임을 명심

6. 계획과 이해

7. 은혜의 승리

8. 새사람

9. 율법과 은혜

10. 예정과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