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적 -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소설문학' 1985년 11월호-
'Books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차 (0) | 2020.07.01 |
---|---|
로즈마리가 진한 향을 피워냈다 (0) | 2019.10.11 |
悼亡(도망) [고인을 애도함] 五言律詩 ㅡ 梅堯臣(매요신) (0) | 2019.08.02 |
온갖 나무로부터 봄이 떨어져버리면 (0) | 2017.12.02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 2017.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