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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시

오래된 서적

오래된 서적 -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소설문학' 1985년 11월호-